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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 특별전 개최

기사입력 : 2020-11-16 14:59:06 최종수정 : 2020-11-16 14:59:06


 

문화재청이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구한말 조선의 건축물 설계와 공사에 관여했던 아파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을 주제로 한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번 특별전은 프롤로그와 3부로 구성되며, 프롤로그에서는 을미사변의 목격자로서 남긴 기록을 소개하고, 1부에서는 '조선에 온 러시아 청년 사바틴', 2'러시아공사관, 사바틴의 손길이 닿다. 3'사바틴, 제물포와 한성을 거닐다'로 구성되어 있다.

 

1895108일 새벽 4, 경복궁 내 건청궁 곤녕합(坤寧閤). 고종 황제의 비 명성황후가 경복궁 거처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사건, 을미사변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사건 전날 경복궁에서 당직을 서기 위해 출근한 아파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이하:사바틴) 그는 당시 시해현장을 목격한 사람으로 이후 약도와 증언서를 남기게 된다.

 

일본인 낭인들이 후궁과 황후로 추정되는 여인을 살해함, 의기양양한 조선의 새로운 친일파에 의해 사실상 조선의 왕이 감금됨.”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자필 증언록은 125년 전 일본의 만행을 밝힌 사료로 역사에 남게 된다.

 

황후 침전에서 일본인 폭도들이 자행하는 만행을 자세히 보았다. 일본인들이 한국 여성들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끌어낸 뒤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내가 황후 전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10~12명의 궁녀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일본인 두목은 나에게 와서 아주 엄격한 어조로 물었다. ‘우리는 아직 황후를 찾지 못했다. 황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18839월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한 러시아 건축가였던 사바틴은 당시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여러 구절로 기록하였다. 이는 을미사변이 일본의 계략에 따라 꾸며진 살해극이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을미사변 목격 후에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조선을 떠났다가 1899년 돌아와 건축과 토목사업에 참여, 러시아공사관과 관문각, 제물포구락부, 독립문, 중명전, 정관헌, 손탁호텔 등을 건축하였다. 특히 러시아공사관 건립은 예산 문제로 최초 설계안이 실현되지 못했고, 사바틴이 예산과 설계를 수정해 공사를 완료했다.

 

이번 특별전은 시해 장소의 약도와 증언서를 영상으로 볼 수 있고,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을 부제로 하고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과 유튜브, 다음 갤러리 등에서 온라인 공개를 하였고 이어 지난달 20일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현장관람을 시작했다.

 

중명전 2층에서 열리는 크지 않은 전시지만, 이 땅의 근대 정치사와 건축사에 굴곡진 발자취를 남긴 사바틴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해 알린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특별전이라 생각한다.

 

<아시아 데일리 문화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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